누구든지 당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의 두 얼굴...
작성일 11-04-2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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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부아노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462회 댓글 56건본문
필리핀의 두 얼굴......
웃음이 가득하고 행복에 가득 찬 미소의 사람들과 그 이면의 어두움이 공존하는 필리핀.
세부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오래살다 보면 더 많은 경험을 하기 마련이죠.
좋은 경험도 있을테고 그렇지 못한 경험도 있겠지요, 최근까지 심심치 않게 우리 교민들의 피해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되다보니
저 또한 마음이 아픕니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가 몇 번 말씀하시더군요, '예전의 나다....'
참 여러가지 경험이 있었더랬죠,,,
그 중의 경험 하나를 말씀드려볼께요, 타산지석 삼으셔도 좋고 재미삼아 읽어주셔도 좋습니다 ^-^;
하루는 제가 칼본 시장을 가기 위해 콜론 메트로 사거리 신호등 앞에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네 귀퉁이에는 100여명정도가 함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죠. (아시다시피 콜론은 세부시티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갑자기 한 명이 무단횡단을 하자 눈치를 보던 10여명이 그를 따라 무단횡단을 했습니다.
그러자 결국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저를 제외한 나머지 90여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길을 건너가더군요...
여기서 한국인의 좋지 않은 습성 중의 하나가 나와버렸습니다. 남들이 웃는 것 보고나서야 따라 웃는... ^-^;;
저도 잘못된 건 알지만 90여명이 이상 없이 길을 건너는 것을 보고 무리에 섞여 길을 건넜습니다. 벌써 감이 오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예상대로, 경찰이 저만 잡더군요....
이건 뭐 내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순순히 타협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니가 제이워킹을 했으니 벌금을 물어야 한다' 라는 뻔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 근데 나만 잡은 이유는 뭐냐?' 라고 마지막 자존심을 한번 세워봤습니다.
근데 이 사람 말하는 게 가관이더군요. '비꼬즈~ 난 너 밖에 못봤다'
그 순간 심박수가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이를 악 깨물게 되더군요.
벌금은 '50페소 온리'랍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에서 금액의 크고 작음을 따질 사람이 어디있겠나 싶습니다.
그건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일만큼 단 돈 1페소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내고 조용조용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벌금은 내겠다, 하지만 나만 잡은 건 이해가 안된다. 내가 너의 상관에게 직접 상황설명을 하고 벌금을 내겠다.' 라고 하자
'벌금 50페소를 현장에서 내지 않으면 서 에서 4시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한다'라고 하더군요.
'걱정마라, 난 시간이 많으니까 함께 가자' 라고 응수했습니다.
그 좋은 구경거리가 난 순간, 교통 경찰과 저를 둘러 싼 사람의 수가 대략 백명이 넘었음은 말할 나위 없겠습니다.
이것은 흡사, 칼본 길거리에서 에스크리마 시연을 하는 것 만큼의 관중이 몰렸을만큼 구경꾼들에겐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을 것입니다.
잠시 후에 닭장 빽차가 왔고 저는 연행되었습니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핸드폰 꺼내서 촬영부터 시작했을 사람이 많았었겠죠.
서에 도착했고 저를 밖에 대기 시키더니 오피스 장 쯤 되어 보이는 사람에게 상황설명이랍시고 이런저런 제스쳐를 하는 것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변호를 했던 것이었겠죠? 내가 직접 설명하겠다는데도 굳이 자기얘기를 먼저하는 것이 다시
한번 저의 화를 돋구었습니다. 결과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서장과는 단 한마디 조차 말을 섞지 못했습니다. 경찰서에 가면 외국인인 제가
무조건 불리할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열이 뻗쳐 뻥카 한 번 날렸는데 판이 커진 셈이죠...
그렇게 후회 비스무레한 푸념 섞인 한숨을 몰래 쉬고 있었던 그때 그 경찰이 나왔습니다.
'서장이 말하길 3천페소라 했지만, 나는 할인해 줄 수가 있다' 라는 크레이지하고 쑈킹한 대답과 함께 말이죠.
저는 제 자신이 단지 한국인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한국인의 대표로 그 자리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나 아닌 또 다른
한국인이 이와 비슷한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었기에 나의 잘못은 인정하되 사람 형편 봐가며 꼬집어 처벌하는 태도는 분명히 고쳐주어야
한다라고 생각해서 그 자리까지 간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니가 그러거나 말거나라고 비웃듯 50페소가 3000페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의 의사소통이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하는 '타협'이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쏘리라 말하며 딱지를 떼달라고 하자 자기 차 기름 값 좀 달라는 것으로 타협을 원하더군요.
열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거지같은 인생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주리?' / '잇쯔업투유~썰....'
장 보려고 준비해왔던 현금 중 일부 1000페소를 주었습니다. '벌금은 그걸로 컨슈머블 해~' 라는 썰렁한 농담과 함께 말이죠.
그러자 '땡큐 썰~' 과 함께... '디스이즈 마이 넘버....' 라며 벌금 딱지에 자신의 전번을 적어줍니다.
닭장차를 함께 타고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제가 원하는 곳에 드랍을 시켜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경찰 친구를 프렌드 먹기는 싫었지만 지금은 꽤나 괜찮은 친구 중에 하나가 되었네요.
현지에 사시는 분들께서는 피할 수 없고 즐길 수도 없으니 타협으로 해결보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으실 것 같네요. ^-^;
그리고 여행오시는 분들께서는 모두 좋은 경험만 많이 하시다가 좋은 기억만을 갖고 돌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