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성칼럼>욕심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작성일 15-03-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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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간다통신 조회 1,856회 댓글 0건본문
천하보배 자기관리(15)
주전 6세기경 그리스의 우화(寓話) 작가 이솝(Aesop)의 일화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배고픈 파리가 꿀단지를 발견하고 가장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꿀맛에 정신이 팔려 한가운데까지 먹어 들어갔다가 결국 날개가 꿀에 젖어 꿈쩍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불나비가 한마디 했습니다.
“야! 바보야! 아무리 꿀맛이 좋다지만 날개 젖는 줄도 모르고 돼지처럼 먹니?”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는데 여기저기서 호롱불이 켜졌습니다. 타오르는 불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불나비는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불꽃 주변을 날며 춤을 추었습니다. 황홀한 아름다움에 취한 불나비는 자기도 모르게 불꽃 가운데로 들어갔고 마침내 그 불은 날개에 붙어서 타 죽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그 때까지도 아직 살아 있던 꿀단지 속의 파리가 말했습니다. “나보고 바보라더니 저는 더 바보구만! 불 속에 들어가서 단번에 죽어버렸잖아?!” 욕심과 쾌락을 쫓아가는 사람이 당하는 낭패를 잘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성경에서는 큰 유혹의 상징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면 파리나 불나비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욕심 따라 마음대로 세상을 살다가 죽어서 천당을 갔는데 안내하는 베드로에게 말했답니다.
“베드로님, 여기는 너무 재미없어요. 모두들 찬송이나 부르고 사니까 너무 단조로워 보여요. 좀 화끈하게 노는 다른 데는 구경하면 안 될까요?” 베드로는 그를 데리고 지옥의 불구경을 갔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가 세상에서 자주 다니던 디스코 클럽과 비슷했으므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엄청 뜨거워서 광란의 춤(?)을 출 수밖에 없는 그곳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구덩이에서 억지 춤을 자동으로 추다가 베드로에게 다시 애걸하며 청원했습니다. “베드로님, 제발 저를 좀 꺼내 주세요. 너무너무 뜨겁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곤란하다고 거절했습니다. “왜 안 되지요? 아까는 이동이 가능했지 않나요?” 베드로가 대답했답니다. “아까는 당신이 관광 비자였으나 지금은 영주권입니다.” 그는 이를 갈며 슬피 울며 지옥 불에서 디스코 춤을 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의 부정적 이야기와 반대되는, ‘노숙자 해리스’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올랐습니다.
미국 중부 캔자스시티에서 노숙자 해리스가 놓아둔 컵에 어떤 여성이 실수로 동전과 함께 다이아 반지를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손을 씻다가 그제야 다이아몬드 반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심정으로 그 노숙자에게 찾아갔답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뭔가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어요.” 그러자 해리스는, "아! 반지요. 제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돌려주었답니다. 그 반지를 돌려받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감격했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사연을 널리 알리며, 착한 노숙자 해리스를 돕기 위한 성금을 호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이아몬드 반지 가격의 몇 배에 달하는 성금이 모여져서 해리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노숙자 해리스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감사의 뜻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 소유가 아닌 물건을 당연히 돌려줬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연합뉴스의 전재용 님이 정리한 이야기인데 정말 큰 감동을 줍니다. 자신의 작은 선행으로 유명해진 해리스는 16년간 떨어져 있던 동생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직(正直)을 양심껏 지키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의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준 행동이 큰 행복을 가져다준 셈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남보다 빨리 또는 더 많이 움켜잡으려고 욕심을 내다가 큰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이 틈을 타고 들어올 때에 “안 돼!” 라고 거부하는 결단이 우리를 건강하고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더 편안하고, 더 명예롭고, 더 행복하고, 더 재미있는 어떤 일을 추구하면 욕심의 덫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욕심과 싸우는 절제의 힘, 인내의 힘, 나아가 선행(善行)을 위해 희생함을 귀한 가치(價値)로 인식하고 실행하지 못하면, 우리도 결국 불행과 낭패에 빠지는 것을 명심하고 절제와 희생의 사순절(四旬節, the Lent)을 살아가도록 힘씁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장 15절)
이교성목사
-글쓴이, 마닐라명성교회 담임-
주전 6세기경 그리스의 우화(寓話) 작가 이솝(Aesop)의 일화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배고픈 파리가 꿀단지를 발견하고 가장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꿀맛에 정신이 팔려 한가운데까지 먹어 들어갔다가 결국 날개가 꿀에 젖어 꿈쩍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불나비가 한마디 했습니다.
“야! 바보야! 아무리 꿀맛이 좋다지만 날개 젖는 줄도 모르고 돼지처럼 먹니?”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는데 여기저기서 호롱불이 켜졌습니다. 타오르는 불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불나비는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불꽃 주변을 날며 춤을 추었습니다. 황홀한 아름다움에 취한 불나비는 자기도 모르게 불꽃 가운데로 들어갔고 마침내 그 불은 날개에 붙어서 타 죽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그 때까지도 아직 살아 있던 꿀단지 속의 파리가 말했습니다. “나보고 바보라더니 저는 더 바보구만! 불 속에 들어가서 단번에 죽어버렸잖아?!” 욕심과 쾌락을 쫓아가는 사람이 당하는 낭패를 잘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성경에서는 큰 유혹의 상징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면 파리나 불나비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욕심 따라 마음대로 세상을 살다가 죽어서 천당을 갔는데 안내하는 베드로에게 말했답니다.
“베드로님, 여기는 너무 재미없어요. 모두들 찬송이나 부르고 사니까 너무 단조로워 보여요. 좀 화끈하게 노는 다른 데는 구경하면 안 될까요?” 베드로는 그를 데리고 지옥의 불구경을 갔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가 세상에서 자주 다니던 디스코 클럽과 비슷했으므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엄청 뜨거워서 광란의 춤(?)을 출 수밖에 없는 그곳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구덩이에서 억지 춤을 자동으로 추다가 베드로에게 다시 애걸하며 청원했습니다. “베드로님, 제발 저를 좀 꺼내 주세요. 너무너무 뜨겁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곤란하다고 거절했습니다. “왜 안 되지요? 아까는 이동이 가능했지 않나요?” 베드로가 대답했답니다. “아까는 당신이 관광 비자였으나 지금은 영주권입니다.” 그는 이를 갈며 슬피 울며 지옥 불에서 디스코 춤을 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의 부정적 이야기와 반대되는, ‘노숙자 해리스’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올랐습니다.
미국 중부 캔자스시티에서 노숙자 해리스가 놓아둔 컵에 어떤 여성이 실수로 동전과 함께 다이아 반지를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손을 씻다가 그제야 다이아몬드 반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심정으로 그 노숙자에게 찾아갔답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뭔가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어요.” 그러자 해리스는, "아! 반지요. 제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돌려주었답니다. 그 반지를 돌려받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감격했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사연을 널리 알리며, 착한 노숙자 해리스를 돕기 위한 성금을 호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이아몬드 반지 가격의 몇 배에 달하는 성금이 모여져서 해리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노숙자 해리스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감사의 뜻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 소유가 아닌 물건을 당연히 돌려줬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연합뉴스의 전재용 님이 정리한 이야기인데 정말 큰 감동을 줍니다. 자신의 작은 선행으로 유명해진 해리스는 16년간 떨어져 있던 동생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직(正直)을 양심껏 지키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의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준 행동이 큰 행복을 가져다준 셈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남보다 빨리 또는 더 많이 움켜잡으려고 욕심을 내다가 큰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이 틈을 타고 들어올 때에 “안 돼!” 라고 거부하는 결단이 우리를 건강하고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더 편안하고, 더 명예롭고, 더 행복하고, 더 재미있는 어떤 일을 추구하면 욕심의 덫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욕심과 싸우는 절제의 힘, 인내의 힘, 나아가 선행(善行)을 위해 희생함을 귀한 가치(價値)로 인식하고 실행하지 못하면, 우리도 결국 불행과 낭패에 빠지는 것을 명심하고 절제와 희생의 사순절(四旬節, the Lent)을 살아가도록 힘씁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장 15절)
이교성목사
-글쓴이, 마닐라명성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