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조세 피난처의 한국인 도둑들
작성일 15-05-0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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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간다통신 조회 1,974회 댓글 2건본문
유럽 초미니국가 가운데 리히텐슈타인이라는 나라가 있다. 유럽 지도에 점으로 찍히는 인구 3만의 이 도시는 외교·관광 장관이 직접 입국 스템프를 찍어주는 친근한 국가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많은 부자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다. 1926년 자산신탁법을 처음 만든 '원조' 조세 피난처가 바로 이 나라다.
이런 조세피난처는 기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올라간다. 당시 그리스 무역상인들은 2%씩 물리는 세금을 피하려고 에게해 섬을 비밀 창고로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근대에 와서 이런 조세피난처는 소국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열강들이 전쟁 복구비를 만회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을 때, 리히텐슈티인이나 영국령 버뮤다 같은 소국들이 세율을 낮춰 부자들의 돈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때 국가 단위로 사업을 크게 확장한 곳이 다름 아닌 ‘스위스’다. 중립국으로 전쟁 피해를 면했고 복구비도 들지 않아 낮은 세금을 유지할 수 있었다. 러시아·독일처럼 혁명이나 전쟁에 휘말린 나라의 뭉칫돈이 스위스로 몰렸다. 그때부터 스위스 은행은 '20세기 비밀 계좌'로 이름을 날렸다.
1990년대 이후 금융기법의 발전과 국가 통제를 벗어나려는 자본의 속성으로 인해 이런 조세피난처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 추산되는 조세 피난처만 해도 대략 60여 곳에 달하고 그곳에 숨어든 돈이 32조달러라고 한다. 모두 공개돼 정상적 수익을 올리고 세금을 떼면 2000억달러가 넘는다. 세금만으로도 왠만한 국가 예산은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돈인 셈이다.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도 잘 알려진 조세 피난처다. 그곳에 차려진 페이퍼 컴퍼니만 12만개다. 비밀 계좌를 가진 사람도 수천 명이다. 미국에 있는 기자 단체 국제탐사보도협회가 이런 정보가 담긴 컴퓨터 파일 250만개를 손에 넣었다. 호주 기자가 찾아낸 자료를 46개 나라 기자 86명이 매달려 진짜 돈 주인을 쫓고 있다.
곧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하면서 여러 나라 대통령과 기업인 이름이 들먹여지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우리나라 독립 언론인 ‘뉴스타파’ 역시 국제탐사보도협회와 협조하여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내국인들의 명단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 가문인 효성그룹의 조욱래 DSDL 회장과 그 아들 조현강(37) DSIV 대표,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등이 확인되었다.
뭐니뭐니해도 놀라운 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 명의로 된 페이퍼 컴퍼니가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예금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라는 말로 내란·뇌물죄에 대한 추징금 1천672억여 원을 납부치 않고 버티고 있는 전 전 대통령. 그러고도 억대 회원권 골프장을 드나들며 초호화판 생활을 하는 모습이 공개돼 여러 차례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던 그의 큰 아들이 조세 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거금을 빼돌린 의혹의 한가운데 섰다.
국세청은 공개된 명단과 정보를 분석해 조직적 탈세 여부를 조사한다고 밝혔다. 정부 협조 없이 아무런 권한도 예산도 없는 민간인들과 기자들이 밝혀낸 정보를 입수해 국가권력이 뒤늦게 조사에 착수하는 모양새는 그 자체로 웃음거리다.
대기업은 해외법인실적을 포함한 연결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돼있고 이를 매년 들여다보는 유일한 기관이 국세청이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인 2011년 국세청이 발표한 역외탈세방지대책에는 “역외탈세 추적 전담센터를 설치하고 국제거래세원 통합분석시스템을 마련하였으며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에 가입하는 등 국제적 조세회피 행위에 강력하게 대처하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장담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지금 국세청의 모습은 뉴스타파의 탐사보도 속도조차 쫓아가고 있질 못하고 있다.
뉴스타파와 ICIJ는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한국인이 245명이라고 했고, 현재까지 네 차례에 걸친 발표에선 극히 일부만 공개했다. 재벌급 기업의 사주와 임원은 물론 문화계, 교육계 인사까지 거명됐지만 해명은 제각각이다.
개중에는 범의가 없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국민들의 궁금증은 증폭되고 있다. 정부가 이미 지하경제 양성화의 한 축으로 역외 탈세 척결을 내세운 만큼 명명백백히 밝혀주길 바란다. 국세청이 조세피난처 관련 자료를 확보하려고 국제공조를 추진하고 관세청이나 금융감독원까지 역외 불법행위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사를 위해선 국내 기관 간에 문턱을 없애고 공조하는 것도 필수적이라 하겠다.
편집위원 장익진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