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여러분, 행복하세요.
작성일 15-09-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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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간다통신 조회 3,158회 댓글 4건본문
빌게이츠가 부자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은 다 들 행복해서 죽겠다고 난리인데 정작 은밀한 대답은 아니라고 한단다. 나는 당연히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더 이상 부러움이 없다고 말을 한다. 누가 다시 물어도 대답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만약 다시 태어나면 뭘 할 것이냐고 물으면 다시 이 일을 할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하니까... 내가 좋으니까.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의 유형가운데 미를 추구하는 단계, 윤리나 도덕을 숭상하는 단계, 종교적인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어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잘 살아본 경험이 짧아 아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쪽이 많은 듯하다.
아무리 정의 사회나 공평을 부르짖어도 국민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쏠려 있으면 마이동풍이다. 자신의 몸을 꾸미고, 집을 꾸미고, 자동차를 꾸미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의 이미지를 몇 줄의 글로 꾸미는 사람들이 제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권익을 배려해 줄 리는 만무다.
나는 대한민국이 빨리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물질이 아니라 인심이다. 사람의 배는 없을 때를 생각해서 더 많이 들어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배고파 본 사람들이 탐식을 한다. 따라서 한국은 빨리 더 잘 살아봐야 한다.
목욕탕에 들어가 보면 두툼한 금 사슬을 목에 걸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남자들,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장신구로 치렁치렁 치장한 여자들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런짖은 한번 해보고 나면 별것 아니다. 못해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개국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모습으로 자신의 가난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는 자신이 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산다. 껄떡거림이 없다. 과시욕도 없다. 그저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산다. 진정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쓸 만한 사람을 고르고, 될 성 부른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아직 가난하다는 말이다.
참 부자는 사람의 껍데기를 보지 않는다. 그 중심이다. 깊은 산사에서 오랜 수련을 한 승려들의 풍요롭고 고요한 눈이다. 하늘의 눈을 가지고 인간의 내면의 참 가치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다. 큰 나무가 있는 마을, 어른이 있는 마을이 좋은 동네이다. 큰 나무와 어른은 사람의 겉보기의 아름다움과 호불호에 흔들리지 않는다. 의젓하다. 스스로 풍요롭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좀 더 행복할 수 없을까?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르듯 좀 더 깊은 내면의 풍요를 만들 수 없을까?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나눈다. 그런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아직 별로 복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복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없는 걸 원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7.1%의 행복지수, 그 나머지는 그럼 뭔가? 돈, 명예, 지위, 건강, 자식 등등 물론 그 행복의 도구들은 된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의 DNA에 젖어들지 않고는 남에게는 행복, 스스로는 불행이다. 거울을 보면서 ‘너 참 행복한 사람이야’ 말할 수 있을 때 그 행복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행복을 찾아가도록 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편집위원 장익진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