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팡가의 루바오, 산 니콜라스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아이가 훗날 필리핀을 통치하는 대통령이 될 줄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디오스다도 P. 마카파갈. 그는 1910년 9월 28일, 얼바노 마카파갈과 로마나 팡안시아 사이에서 4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기에 가난으로 인해 그의 학구열은 더욱 고취되었으며 비록 책을 살 돈이 없었지만 스스로 노력하여 루바노 초등학교를 1925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1929년 팜팡가 고등학교를 전체 4위로 졸업하며 탁월한 재능을 발위하였다.
1932년, 그는 UP에서 법대 예과를 이수했으며 국가고시에 입학한 후 농림수산부에서 일했다. 그 후 곧바로 UP법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뛰어난 토론실력이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던 호놀리오 벤트라의 눈에띄어 그의 지원하에 UST로 전학하여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지원받았다.
1936년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어린시절 가난한 농부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직접 느끼며 성장했으며 무엇보다 부유한 지주들의 천대는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었고 추수가 끝난 후 지주들은 소작인들의 가족을 위한 양식도 안될정도의 소량만 남기고 곡식을 모두 가져가 버리던 기억들은 마카파갈이 부자들에게 반감을 가지도록 작용했다.
마카파갈은 퓨리타 델라 로사와 결혼했으나 아내를 병으로 사별했으며 딸에게 첫번째 아내의 이름을 딴 마리아 세일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후에 마리아 세일로가 팜팡가의 지방장관이 되었을 때 다른 자매들도 정치에 참여했다. 아내와 사별한 그는 후에 팡가시난의 한 기술자인 주안 마카렉과 이레네아 델라쿠르즈 슬하 외동딸인 에반젤리카 마카렉과 결혼하여 마리아 그레고리아와 디오스다도 Jr. 두 자녀를 두었다. 지난 1936년 사법고시에서 최고성적을 기록하며 합격한 그는 가장 유명한 법률사무소인 로스, 로우렌스, 샐프, 카라스코소의 사무실에서 보조 변호사로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근무했다.
그는 당시 입지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학업에 열중하여 1941년 UST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그는 당시 대통령 퀘죤의 지방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일본 식민지배 당시 그는 람세이 게릴라에 지원하여 루손 동부 중심지를 통솔하는 장군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끝나자 그는 여러 법률회사의 고문으로 활동하다 1947년, 필리핀 변호사 협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46년 자신의 법률회사인 마카파갈, 에우세비오를 개업한다. 1954년 에스콜타에 “디오스다도 마카파갈과 그 협회”라는 이름의 변호사 사무소를 차리고 변호사로서 뿐만 아니라 UST와 산베다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다.
1941년 9월, 시간강사로 시작했던 그는 1947년에 조교로 승격되었으며 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그의 강의는 1952년부터 정식교수로 임명되며 다시 계속되었다. 1947년 법관 보좌역으로 활동했던 그는 1년후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당시 부의장이었던 부통령 퀴리노로부터 그의 능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임무를 받게된다.
워싱턴 상주 필리핀대사로 잠시 활동했고 법률 조항에 관한 상담자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퀴리노는 팜팡가 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정치인 모임에서 권유받아 정계 입문을 처음 시도한 당시 선거에 아마도 유손 후보에게 밀려 패했으나 1953년 재도전을 통해 시장으로 선출되어 국회로 영역을 넓혀 국회에서 연설을 통해 그의 정치이념을 표출하기 시작했으며 대통령으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국회의원 임기동안 필리피노 국민들을 위한 적절하교 효율적인 법안들을 많이 제시하였으며 그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둔것으로 알려져 있는 법안 몇가지를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최저 임금법안 제정.
2. 지방 은행관리법
3. 지방 보건법
4. 바리오 협회 법률
5. 바리오들의 산업화 진흥법
6. 전국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와 쌀의 수출장려법안
그 외에도 토지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에서 판매한 국영지 민영화 사업에도 크게 협조했다. 그는 지난 1998년 5월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리토 라피드 장관의 재선에 낙선했지만 그의 딸 마리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와 에반젤리카와 정치에 입문하여 성공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재 필리핀 대통령직을 맡고있는 그의 딸 마리아 글로리아 파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은 1998년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그 후 퇴출된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뒤를이어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며 대선에 대통령후보로 출마,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