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장관인 아르투로 D. 브리온은 노동부 장관이 되기 전 노동계와 관련하여 많은 활동을 해 왔으며 변호사로서 그 분야에 풍부한 경험과 활동을 해 왔었다. 브리온 장관은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장관으로 준비되었다. 그는 1974년 사법고시에서 91.65%의 점수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아테네오 시절 장학생으로 최고 학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1946년 12월 29일 은퇴한 법관인 에돈 B. 브리온과 라우라 S. 디존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산파블로 시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산파블로 대학시절에 수학을 전공했으나 후에 1974년에는 변호사로 진출하게 되었다. 1975년 사법시험 통과후 브리온은 시구온 레이나, 몬테실로와 옹시아코 법률 사무소에서 일했다. 그 후 7년간 노동 사업과 관련해서 공중 변호사로 일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84년에는 이 사업에서 물러나 필리핀 국가 의회에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에 노동부 장관 보좌관으로 법률에 관련된 사항을 자문했다. 또한 필리핀 국가 회의에서 노동과 고용위원회의 부회장으로 법률개정위원회에서 헌법개정에 참여했다. 1986년에는 브리온 장관은 개인 변호사로 나티비다드, 델로스 레이스, 마암봉과 함께 일했으나 바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가서 공부하게 되었다. 브리온 장관은 캐나다에 있는 동안에도 노동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요크 대학에서 대학원과정을 공부하면서 온타리오에서 법률 수련을 함께 했다. 브리온 장관은 1995년에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와 고국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 그는 2001년 까지 법률 사무소에서 일했다. 2001년 3월에는 노동부의 차관으로 공중을 위해서 다시 일하게 되었다. 그의 오랜 멘토인 블라스 오플 상원의원이 외무부 장관으로 상원의원직을 그만두었을 때 오플은 브리온을 특별히 자신의 참모로 삼아 해외 필리핀 근로자들을 위해 리더로 삼았다. 이러한 수행의 결과 2003년 대법원에 협력 판사로 선출되었다. 그는 민간부문에서 노동 조합의 두개의 기준이 되는 법률을 세웠다. 그는 기준으로 공정성을 중요시하면서, 만약에 적합하게 공정성이 적용이 된다면, 산업에서 평화와 조화로 필리핀의 경제가 안정되고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을 정책으로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