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3월 25일은 일로코스 주민들에게 이키스 티 칸돈(칸돈의 봉기)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날 칸돈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페데리코 이사벨로 아바야가 인솔하는 반란군들은 마을 플라자에서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기를 게양했다. 아바야가 비밀혁명집단인 에스피리투 데 칸돈에서 불려졌던 이름인 벨롱은 피오 마다랑, 토리비오 아바야, 나자리오 그라이, 펠난도 형제들, 프란시스코 귈날다, 마누엘, 그의 조카, 레온과 함께 비밀혁명집단에서 활동해 왔다.
1898년 3월 24일, 나자리오 그레이가 체포되어 고문당했다. 그레이를 밀고한 반역자가 행동대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같은 날 저녁 연회를 열고 있던 스페인계 혼혈 알투로 리퀘테에게 전달되었다. 리퀘테는 이 소식을 그의 친구 벨롱에게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직원들은 즉시 무장하여 3월 25일 새벽 2시에 급습, 스페인 기지의 경비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은 수도원을 점령하였으며 라파엘 레돈도 교구 신부와 그곳을 방문했던 2인의 수도사들을 처형했다.
벨롱은 곧 칸돈의 자유정부를 선언했다. 이는 안드레스 보니파쇼가 푸가드라윈에서 봉기를 했던 때로부터 1년여가 지난 시기였다. 벨롱은 그의 다른 군사들이 다른 마을들로 원정을 간 사이 북부의 산티아고를 공격했다. 당시 칸돈을 습격했던 스페인 군인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이 마을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이곳에 남아 있던 소수의 반란군들은 자체 해산되었다.
귈날다 형제들은 라 유니온으로 도망하였다. 마누엘 형제들과 레온, 토리비오 아바야는 데시테리오 아그불로스, 빅토리노 가둣, 울바노 갈락, 로벌토, 블라시도 귈날다, 피오 말라랑, 세베로 파레데스, 발렌틴 루비오와 함께 사형되었다. 칸돈 반란군의 지도자는 산 속에 숨어서 지내다가 후에 마누엘 티니오가 지도하는 필리핀 혁명군에 가담하였다. 그는 이고롯 주민들을 신병으로 모집 인솔하여 1899년 2월, 필리피노-미국인 전쟁의 시초였던 칼라오칸 전쟁에 참가하였다. 한 해가 지난 후 그는 남부 일로코스 지역 게릴라 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1900년 5월 3일, 사살되었다. 그의 시신은 미국인들이 운반하여 칸돈지역 마을 플라자에 진열되었다.
당시 벨롱은 일로카노들의 전설적인 인물로 일컬어지고 있었다. 그의 동상은 벨롱이 혁명의 깃발을 게양했던 그 자리에 세워져 현재까지 기념되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