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리나리오 마비니는 1864년 7월 23일 바탕가스의 탈라가라는 마을에서, 이노센시오 마비니와 디오니시아 마라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마비니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글쓰기와 읽기를 배웠다. 마비니는 어린 나이에 심플리시오 아벨리노 초등학교를 심부름꾼 일 등을 하며 고학으로 졸업했다.
그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마비니는 마닐라의 산후안 데 레트란 단과대학에 입학하여 세계사를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잠시 교사생활을 하던 마비니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심에 1888년 산토 토마스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1896년 마비니는 열병에 걸려 몸에 마비 증상이 왔다. 이러한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마비니는 혁명 운동에 있어 좀더 활동적인 부분을 담당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혁명의 제 2단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비니는 혁명정부를 구상해 냈으며 아귀날도 정부의 국무총리 그리고 외무부장관 역할을 해냈다. 1899년 8월 혁명국회는 그를 대법원장으로 선출했다. 1899년 12월 마비니는 미 당국에 의해 체포, 투옥되었고 1900년 10월 3일 풀려났다. 그후 그는 작은 오두막 집에서 정치 기사를 쓰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901년 괌으로 유배되어갔다. 1903년 2월 마비니는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같은해 5월 13일 콜레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