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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EDSA I 발생당시 생생한 순간포착 회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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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코리아포스… 댓글 0건 조회 2,664회 작성일 11-03-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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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EDSA I 발생당시 생생한 순간포착 회고기록


1078542440-edsa.jpg현재 20대부터 그보다 어린 세대 약 430만여명은 지난 1986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있었던 EDSAI 당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진정한 EDSAI을 재조명 하고자 책들과 신문기록등을 토대로 아래와 같이 기술한다. 이 내용을 통해 18년전 세계를 놀라게한 평화시민혁명의 의미와 당시 상황을 알아보자.

둘째날 : 1986년 2월 23일

자정 : 헤이메 신 추기경이 라디오 베리타스를 통해 현 정권에 대항하여 일어난 후안 폰세 엔릴 방위부장관, 피델 라모스 Armed Forces vice chief General , 개혁군을 돕기를 호소하자 수천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프로스퍼로 올리바스 수도권 지휘소장은 펠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EDSA에 모여있는 군중을 해산시키기에는 자신의 군 병력으로는 불가능 하다고 보고하는 한편 조세푸스 라마스 소장에게 지원을 요청하라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지시도 무시했다.

새벽 1시 45분 : 대법원장 네스토 알람파이가 사임했다.

새벽 3시 : 파비안 벌 총사령관은 포트 보니파쇼에 수하 군인들을 집결시켰으며 라마스에게 아귀날도와 크라메 급습 지휘를 맡겼다.

엔릴은 코라손 아퀴노에게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으로 공식정부를 선포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신 추기경은 방송을 통해 마르코스와 벌에게 폭력사용을 자제할 것을 부탁했다.

새벽 4시 : 워싱턴에서 조지 술츠 국무장관은 필리핀 정국을 관망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새벽 5시 30분 : 마르코스 군대가 불라칸의 라디오 베리타스의 송신탑을 파괴하여 루손지역의 전파공급을 제한했다.

알테미오 타디알 해군중령은 짧은 전투경험의 라마스를 개혁군 토벌 작전지휘자로 지명했다는 정보를 받고 깜짝 놀랐으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말라카냥 경비를 더욱 철저히 했다.
당시 세부에 있던 아퀴노는 그녀를 안전한 팔라완으로 이동시키겠다는 라몬 미트라의 제안을 거절하고 마닐라 행을 결심했다.

군중들은 크라메 안에서 축하를 했고 EDSA로 몰려드는 다양한 계층의 빈부차를 넘어선 군중의 수는 계속 증가하여 인간바리케이트가 점점 두터워져갔다.

오전 8시 : 마르코스는 공군 15사단 사단장 안토니오 소텔로 대령에게 크라메 내에 있는 헬리콥터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했다. 한사람의 자원자도 찾지못한 소텔도 대령은 수하들과 함께 방법을 논의했다.

오전 11시 : 아퀴노는 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에게 개혁군을 지지해 줄 것과 마르코스 대통령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정오 : EDSA에 모인 군중의 수는 30에서 40만명여명을 육박했으며 마리아상을 앞세우고 노란색의 물결을 이루었다.

오후 1시 30분 : 알프레도 림 수도경찰국장과 수하 경찰부대는 군중을 해산시키라는 명령을 무시했다.

오후 2시 20분 : 아퀴노가 마닐라에 도착하여 그녀의 자매가 있는 그린힐의 자택으로 이동했다.

엔릴과 라모스는 크라메의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결정하고 무장태세에 들어갔으며 EDSA의 시민들은 엔릴과 라모스 개혁군을 위해 아귀날도를 가로지른 인간보호막을 형성했다.

오후 3시 : 올티가스 아비뉴와 EDSA 교차로에 있던 시민들이 인간바리케이트를 형성해 진입을 시도하는 탱크를 막고나서 양측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오후 4시 : 엔릴과 마르코스간의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이때 엔릴은 탱크진입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마르코스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오후 6시 30분 : 라디오 베리타 방송이 정부군의 송전소 파괴로 인해 방송이 중단되자 임시 송전소로 대치했으나 급작스런 고장으로 방송이 중단되었으며 엔릴은 뉴스 기자회견을 통해 마르코스측의 사면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발표, 라모스는 “신 군부대”형성을 거론했다.

오후 7시 : 파팔 눈시오 브루노 톨피글리아니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현 필리핀 사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라는 서신을 전달했다.

백악관에서는 마르코스 정권의 신뢰도와 합법성의 여부에 대해 의문을 재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저녁 11시 30분 : 개혁군 봉기당시부터 라디오 베리타스를 방송하던 준 케이트리가 dzRJ 라디오 방송국으로 옮겨 베리타스 방송을 시작했으며 계속 이동을 하여 정부군의 추적망을 피했다.

탱크가 후퇴하며 군중은 약간 해산분위기를 띄었으나 인간바리케이트는 점점 두터워져만 갔다.

마르코스 정권을 버린 정치인으로는 라울 라베 호놀룰루 영사, 노엘 부안 중위, 토마스 만롱갓 육군중장, 레나토 데 빌라, 디오니시오 탄-가테, 카를로스 아귈랄, 베냐민 이그나시오, 로드리고 구탕, 나르시소 카브레라 경찰본부장, 루벤 에스칼차, 알프레도 이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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