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다,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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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마간다통신 댓글 0건 조회 2,050회 작성일 15-04-08 14:08본문
양(梁)나라 혜왕(惠王)이 맹자를 초청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대해 묻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혜왕은 맹자를 불러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며 말했다.
“과인은 나라에 흉년이 들면 백성들을 흉년이 들지 않은 곳으로 옮겨 살게 합니다. 과인이 이렇게 백성들을 극진히 보살피고 있는데, 왜 이웃나라의 백성이 이곳으로 모여들지 않는지요?”
맹자는 한참동안 혜왕을 꾸짖은 후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 굶주려 죽는 송장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어도 창고의 곡식을 풀어 베풀 줄 모릅니다. 또 사람이 죽으면 나 때문이 아니라 흉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나 때문이 아니라 내 손에 든 칼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스스로 심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심판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심판하려 한다.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으면서 옆에서 죽이 맞아 장단을 맞추기 일쑤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럴까?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모든 과오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
옛말에 ‘물고기를 모이게 하려면 먼저 물을 끌어들이고, 새를 모이게 하려면 먼저 나무를 심어라’ 는 말이 있다. 물이 없는 곳에 물고기는 오지 않고, 나무가 없는 곳에 새는 오지 않으며, 덕이 없는 임금 밑에는 백성이 모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는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기 전에 스스로 덕이 없음을 반성해야 한다.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은 자신의 죄와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 하려한다. 그런 자에게 반성이란 없다. 사실 밖으로 드러난 악은 비교적 가벼운 것들이다. 오히려 그것은 선으로 포장된 그늘에 숨어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불필요한 자만심은 화를 부를 뿐이고 교만한 것은 멸망의 근원 이라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 훨씬 많고, 나의 지식을 뛰어넘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오를 보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은 깨우치지 못한 자이다. 깨우친 사람은 늘 자신을 먼저 탓하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 그것은 곧 자기 수양의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라” 했다.
<삼국지>에나오는 유포는 형주 땅을 다스리고 있을 때 유비가 군사를 잃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을 무렵 술자리를 마련해 유비를 위로 했다한다. 유비는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며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고사는 여기에서 생겨났다. 만일 유비가 이 날의 술자리에서 뼈저린 반성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그는 촉나라 군주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반성은 변화의 시작이며 개혁의 시작이다. 반성이 없으면 그는 보다나은 존재로 진화할 수 없다. 물론 반성이 인생의 성공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선을 실천하기 위한 나침반이며, 보다나은 존재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미리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 잘못되었을 때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편집위원 장익진 [email protected]
“과인은 나라에 흉년이 들면 백성들을 흉년이 들지 않은 곳으로 옮겨 살게 합니다. 과인이 이렇게 백성들을 극진히 보살피고 있는데, 왜 이웃나라의 백성이 이곳으로 모여들지 않는지요?”
맹자는 한참동안 혜왕을 꾸짖은 후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 굶주려 죽는 송장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어도 창고의 곡식을 풀어 베풀 줄 모릅니다. 또 사람이 죽으면 나 때문이 아니라 흉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나 때문이 아니라 내 손에 든 칼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스스로 심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심판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심판하려 한다.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으면서 옆에서 죽이 맞아 장단을 맞추기 일쑤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럴까?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모든 과오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
옛말에 ‘물고기를 모이게 하려면 먼저 물을 끌어들이고, 새를 모이게 하려면 먼저 나무를 심어라’ 는 말이 있다. 물이 없는 곳에 물고기는 오지 않고, 나무가 없는 곳에 새는 오지 않으며, 덕이 없는 임금 밑에는 백성이 모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는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기 전에 스스로 덕이 없음을 반성해야 한다.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은 자신의 죄와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 하려한다. 그런 자에게 반성이란 없다. 사실 밖으로 드러난 악은 비교적 가벼운 것들이다. 오히려 그것은 선으로 포장된 그늘에 숨어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불필요한 자만심은 화를 부를 뿐이고 교만한 것은 멸망의 근원 이라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 훨씬 많고, 나의 지식을 뛰어넘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오를 보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은 깨우치지 못한 자이다. 깨우친 사람은 늘 자신을 먼저 탓하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 그것은 곧 자기 수양의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라” 했다.
<삼국지>에나오는 유포는 형주 땅을 다스리고 있을 때 유비가 군사를 잃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을 무렵 술자리를 마련해 유비를 위로 했다한다. 유비는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며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고사는 여기에서 생겨났다. 만일 유비가 이 날의 술자리에서 뼈저린 반성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그는 촉나라 군주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반성은 변화의 시작이며 개혁의 시작이다. 반성이 없으면 그는 보다나은 존재로 진화할 수 없다. 물론 반성이 인생의 성공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선을 실천하기 위한 나침반이며, 보다나은 존재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미리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 잘못되었을 때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편집위원 장익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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