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 속의 질서, 소원을 빌며 촛불을 켜는 신도와 화재예방을 위해 초를 뺏는 경관의 모습이 섞인 곳
필리핀에는 한국에서는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홀리위크이다. 이 부활절을 맞아 키아포 성당에서는 파나타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 코리아 포스트 취재팀이 출동했다.
키아포 성당은 키아포의 중심부의 사람많고, 시끄러운 곳에 서 있는 교회이다. 1582년에 스페인 인들에 의해서 창립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교회 자체보다는 교회 앞의 광장인 플라자 미란다(Plaza Miranda)와 그 주변의 노점에서의 서민의 열기가 구경할만하다. 키아포 교회는 스페인 사람이 세웠는데, 17세기에 멕시코로부터 가져온 '블랙 나사렛'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나무로 만든 흑색의 거대한 십자가와 등신대의 그리스도 상인데 병자를 구원하는 것으로 여겨져 있다. 사람들은 성호를 그으며 기도 하거나 블랙 나사렛의 발을 만지며 기도를 한다. 그때문에 키아포 성당의 블랙 나사렛은 발부근만 하얗게 드러나 있다.
하나님과의 서약(Importance of a Vow)라는 행사기간 동안에 여자들은 머리를 나뭇잎으로 두르고, 자주 빛이나 검은 헐렁한 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다닌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줄로 꽁꽁 묶은 대나무 조각으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한다.
계속된 채찍질로 등에 생긴 상처에서 번져나오는 피가 붉게 등을 물들인 모습은 보기에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정통파 신도들, 특히 현실적 사고를 가진 성직자들은 그러한 행위를 싫어한다.
이러한 행사를 가리켜 "파나타(Panata)"라고 한다. 파나타 의식은 자기들이 존경하는 성인을 통하여 자기들이 소원하는 기도나 희망이 성취되었음에 감사를 드리는 의식에 참가하겠다는 자기 스스로의 서약식이다. 어떤 사람은 질병이 낫기를 기도하면서 이 축제에 참가할 것을 약속하고, 어떤 사람은 시험합격을 간구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녀들을 위하여 간구하면서 이 축제 즉, 파나타(Panata)의식에 참가할 것을 서약한다.
오전 9시에 취재팀이 도착한 키아포 성당 앞 광장인 플라자 미란다에는 파나타 행사를 치루고 있었다. 하지만, 대나무 조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은 키아포 성당 부근에서는 볼 수 없었다. 행사 관계자에게 물어본 결과, 메트로 마닐라에서는 앞으로 부활절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처럼 자신의 손에 못을 박는 다거나, 대나무로 자해하는 등의 행위는 금한다고 말했다. 팜팡가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행사를 시행한다고 하니, 만약 굳이 보고싶다면 다른 주로의 여행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행사가 없어진 배경에는 아마도 키아포 성당측에서 정통파 신도들이 손을 쓴것 같다는 귀뜸도 들을 수 있었다.
이날 파나타 행사에는 약 2만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맨발로 퍼레이드의 행렬을 따랐다. 비록, 육체적인 고난은 하지는 않았지만, 육체적 고난을 정신적인 고난으로 대신하며 자신들이 준비한 블랙 나사렛 상을 여러명이 나누어 들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이 행렬은 키아포 마켓에서 시작하여, 키아포 성당을 한 바퀴 돌고, 플라자 미란다 광장 앞까지의 여정으로 이어졌다. 퍼레이드는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쉬었다가 하루 종일 같은 부근을 도는 것으로 새벽 4시 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행사의 가장 앞 열에는 흰 옷을 입은 키아포 성당의 성직자들이 위치하고, 퍼레이드의 다른 참가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키아포 시장에서는 채소, 과일, 생선, 고기 등 외에도 잡화를 팔고 있으며 시장 안에는 값싼 간이식당도 있었다. 또한, 파나타 행사를 맞이하여 타로카드 점을 보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양초를 팔면서 주변에 불을 붙여 놓은 초가 많아서 화재를 예방하려는 경찰과 불이 붙은 양초를 뺏고 뺏기는 촌극도 벌어졌다. 청결하지는 않지만 축제를 맞이한 시장의 풍경이 마치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을 연상하게 하였다. 근처에는 몹시 혼잡하여 구경꾼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니,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겠다.
퍼레이드의 목적지인 미란다 광장에 도착하자, Quack doctor라는 일종의 주술사들을 볼 수 있었다. Quack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 '가짜'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짜 의사'라는 말이니, 의역하자면 '돌팔이 의사'정도 되겠다. 하지만 이름에 비해서 필리핀의 서민들에게는 꽤 효험이 있는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떤이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머리를 쓰다듬고 나자 나았다고 좋아하고 배가 아프다고 말하면 Quack doctor가 들고 다니는 나무 지팡이로 문지르면 한결 나아졌다고 기뻐하였다.
또한, 허리가 아프다고 자신의 허리를 내미는 사람이 꽤 많았다. 미신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카톨릭의 종교축제가 필리핀 전통과 혼합된 형태를 보여 주는 필리핀의 독특한 문화로 느껴졌다. 키아포 성당 주변 벽은 기도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성당 주변부의 떠들석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성당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그 넓은 키아포 성당이 발딛을 틈없이 가득 찼 지만 2살 짜리 어린애에서 70이 넘은 노인까지 누구하나 웃거나 떠드는 사람은 없었다. 말 그대로 성스러운 장소였다. 맨발로 퍼레이드를 행진했던 사람들도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두 비닐에 있는 물로 발을 씻고 들어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성당을 나오자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키아포의 주요 축제인 파나타도 끝나가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많은 부분들은 축제와 함께 어우러진다. 일시적으로 축제를 이용한 상업적인 기업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번성을 하지만, 일부 사람들, 즉 장사꾼, 놀이꾼, 미용사, 약장사, 소매치기, 거지와 같은 사람들이 이 축제에서 저 축제로 옮겨 다닌다. 필리핀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필리핀은 '축제의 나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