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에 대항했던 최초 3인의 필리피노 신부들(마리아노 고메즈, 호세 벌고스, 하신토 사모라)중 가장 젊은 나이의 호세 벌고스는 일로코스 술의 비간에서 지난 1837년 2월 9일경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호세 불고스와 플로렌시아 가르시아였다.
어린 호세의 첫번째 선생님은 그의 어머니로 읽고 쓰기를 가르쳤다. 비간에서 1849년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마닐라로 유학해 한 후안 데 레트란 칼리지에 등록하여 전과목 수석을 휩쓸었다.
17세가 되었을때 호세 벌고스는 Bachiller en Artes과정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UST에서 신학을 전공, 신부의 길을 준비했으며 인트라무로스의 Parroquia del Sagrario De Intramuros에서 첫번째 미사를 집도했다.
필리피노 신부들에 대한 불이익과 불평등에 대해 용감하게 맡서던 호세 벌고스는 후에 “필리피노 수도사의 영웅”으로 불려졌으나 스페인 수도사들에게 있어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카비테 폭동이 발생한 1872년, 스페인 정권은 그와 고메스 신부, 사모라를 폭동 주동자로 모함해 체포했다. 산티아고 요새에서 1872년 2월 15일경 열린 재판결과 이들 3인의 필리피노 민족주의 신부들은 가로테라는 형태의 사형집행이 선고되었다.
목을 철로만든 고리에 철 나사로 박아 조여서 사형시키는 잔인한 처형방법으로 1872년 2월 17일 사형을 당한 이들은 첫번째 필리피노 순교자로 필리핀 종교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의 죽음과 동시에 수많은 필리피노 독립운동가들이 나타나는 등 필리핀 독립에 있어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