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1월 27일 상원이던 베니그노 아퀴노와 도나로라 아퀴노 사이에서 출생한 그는 스페인과 미국에 대항해 투쟁했던 필리핀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서빌라노 아퀴노로부터 필리핀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했다. 산베다 대학을 졸업한 아퀴노는 1948년 마닐라 타임즈의 최연소 기자로 활동을 시작, 1950년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도 활동했다.
이와같은 경험은 그가 정열적인 언론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아퀴노는 그의 아버지의 뒤를이어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던 그는 1972년 9월 21일 마르코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후 이를 반대하자 마르코스 정권의 반대자로 군법에 따라 사형선고를 받게되었으나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아퀴노에게 마르코스대통령은 그의 사형집행을 면해주었다.
1980년, 마르코스는 아퀴노가 미국으로 건너가 심장병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미국 보스턴에서 치료와 요양을 하던 아퀴노는 1983년 8월 21일 중국항공을 통하여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하지만 저격수로부터 살해당했다. 그의 장례기간동안 국민들은 아퀴노의 죽음을 애도하며 노란리본을 달고 노란티셔츠를 입고 슬픔을 표현했으며 아퀴노의 죽음에 대한 분노는 마르코스 정권의 종식과 베니그노 아퀴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퀴노의 대통령 취임으로 연결되었다.